부산신항. BPA 제공정부가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전국 4개 항만공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부산을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부산지역 시민사회가 항만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한 데 이어 4개 항만공사 노동조합도 공동 성명을 내고 "중앙집권적 통합"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노조는 정부가 내세운 항만 간 연계 강화와 수요자 중심 서비스, 비용 절감 논리 모두 물리적 통합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며 객관적인 비용·편익 분석과 사회적 논의를 요구했다. 시민사회 이어 4개 항만공사 노조도 반발
정부는 3일 행정·공공기관 이전 및 공공기관 기능개혁 방안을 발표하면서 부산항만공사(BPA)와 인천항만공사(IPA), 울산항만공사(UPA), 여수광양항만공사(YGPA)를 가칭 '한국항만공사'로 통합하는 방안을 내놨다.현재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4개 항만공사를 하나의 법인으로 합치고 기존 항만공사는 지역 지사로 전환해 항만별 특화사업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정부 발표 직후 해양수도부산발전협의회 등 부산지역 6개 시민단체는 긴급 성명을 내고 통합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항만의 국제경쟁력과 지역의 경제적 자율성,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정책적 오류"라며 "기능과 배후산업, 발전전략이 다른 항만을 중앙집중형 조직으로 묶으면 항만별 전문성과 자율성, 신속한 의사결정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만공사 노동조합도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반대 대열에 합류했다. 노조는 정부가 노정 협의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충분한 협의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통합 방안을 발표했다며 의사결정 과정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부산은 환적, 울산은 에너지…시장 자체가 다르다"
시민사회와 노조가 공통으로 문제 삼는 부분은 4개 항만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부산항 신선대감만터미널. BPA 제공부산항은 컨테이너와 환적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허브항만이고, 인천항은 수도권 물류와 대중국 교역의 관문 역할을 한다. 울산항은 에너지·액체화물 중심 항만, 여수광양항은 석유화학·제철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산업항만이다. 노조는 각 항만이 서로 다른 경제권과 화물, 고객, 선사·물류기업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만큼 단순히 한 조직으로 합친다고 항만 간 연계가 강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항만별 투자 우선순위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커지고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게 노조 측 판단이다.
노조는 "지역 항만 간 연계나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항만공사를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정부가 물리적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인 해외 성공 사례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장 결정 중앙 승인 거치면 '옥상옥' 될 수도"
정부가 통합 명분으로 제시한 '수요자 중심 서비스 강화'를 두고도 반론이 제기됐다.
노조는 항만의 직접적인 수요자는 선사와 화주, 터미널 운영사, 물류기업, 배후단지 입주기업 등인데 정작 항만·물류업계에서 통합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각 항만공사는 현장에서 선사와 화주 등의 요구를 반영해 투자와 인센티브, 항로 유치, 배후단지 정책 등을 결정한다. 하지만 통합 이후 주요 의사결정이 중앙 조직의 승인과 조정을 거치게 되면 지역 항만의 자율적인 결정권이 축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부산항만공사(BPA). 송호재 기자노조는 이를 두고 "현장 위에 또 하나의 의사결정 구조인 '옥상옥'을 세우는 것"이라며 "항만 경쟁력은 조직의 크기가 아니라 속도와 전문성, 현장 대응력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얼마나 아끼나"…비용 절감 근거 공개 요구
비용 절감 효과를 둘러싼 논쟁도 불붙을 전망이다.
정부는 4개 항만공사의 공통 기능을 통합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공통 업무 효율화와 법인 통합은 별개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일부 공통업무가 있다면 시스템 연계나 공동구매, 공동사업 등을 통해서도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특히 2011년 당시 해양수산부가 추진한 '항만공사 운영개선 검토용역'을 근거로 들었다. 당시 용역에서는 물리적 통합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통합 법인 대형화와 의사결정 구조 복잡화에 따른 업무 효율 저하와 경쟁력 약화 우려가 제기됐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정부가 통합 필요성을 주장하려면 어떤 기능이 중복되고 연간 어느 정도 비용이 발생하는지, 통합으로 얼마나 절감할 수 있는지를 수치로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직개편과 인사·보수체계 통합, 정보시스템 개편 등에 들어갈 전환 비용까지 포함한 실질적인 비용·편익 분석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시민사회·노조 "국회 법 개정까지 저지"
시민사회는 통합 방안이 정부가 강조해 온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기조에도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항만이 지역의 핵심 성장 거점인데 주요 정책과 투자 결정권을 중앙 조직으로 집중시키면서 지방분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이다. 시민단체들은 국회에도 통합을 위한 항만공사법 개정에 동의하지 말고 충분한 공론화와 지역 의견 수렴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부산항 신항 전경. 부산항만공사 제공4개 항만공사 노조 역시 "항만공사 제도는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인 항만 운영에서 벗어나 항만별 특성에 맞는 전문성과 자율성, 책임경영을 구현하기 위해 도입됐다"며 통합을 '시대 역행'이라고 규정했다.
반대 움직임은 국회 입법 과정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부산지역 시민사회는 울산·경남, 여수광양, 인천 등 항만 지역 시민사회와 항만업계, 국회 등과 연대해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4개 항만공사 노조도 정부가 통합을 강행할 경우 상급단체와 항만·물류업계, 시민사회, 지역사회와 연대하고 향후 국회의 항만공사법 개정 과정까지 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