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조기대선이 열린 지 일주일 만에 부산에서 친환경 북극항로 포럼이 열렸다. 강민정 기자"북극항로를 항해하는 배가 정교한 전략만으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배를 맞이할 항구가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10일 부산 BPEX(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친환경 북극항로 포럼'. 송상근 부산항만공사(BPA) 사장의 개회사는 이날 논의의 핵심을 압축했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전환의 물결 속에서 북극의 해빙은 새로운 해상 항로를 열고 있다.
이 항로가 부산의 미래 항로가 될 수 있을지를 묻는 자리이자, 지난 6.3 조기대선에서 당선된 이재명 정부의 대표 공약이 첫발을 뗀 순간이기도 했다.
'지구의 상처에서 기회를 찾다'… 북극항로의 모순된 상징성
이날 기조발제를 맡은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2050년쯤 북극해가 여름철 완전히 얼음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며 국제기후변화패널(IPCC)의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그는 "기후위기라는 위협이 북극항로라는 가능성을 만들고 있지만, 이것이 곧바로 해운산업의 축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국제사회는 지금 '이 항로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해 북극항로를 통해 3800만 톤의 화물을 운송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해사기구(IMO)는 북극해에서 중유 사용을 금지하고 친환경 연료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북극항로는 기후위기의 결과이자, 환경 책임의 시험대다.
부산은 준비돼 있다… 녹색 항만으로 진화하는 현장
이날 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는 송상근 부산항만공사 사장. BPA 제공이날 패널로 참석한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김엄지 실장은 "부산항은 단지 크기나 처리 물량이 아니라, 친환경성과 스마트 기술 측면에서 이미 준비된 항만"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부산항은 △액화천연가스(LNG) 벙커링 인프라 구축 △저탄소 연료 보급 시스템 확대 △스마트항만 운영 체계 등에서 국내 선도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선박 입출항부터 하역, 대기 중 탄소배출까지 전 과정에서 탄소를 절감할 수 있는 구조로 진화 중이다.
LNG 추진 선박을 위한 연료공급 설비는 물론, 항만 배출 저감 기술, 배후단지의 친환경 물류 체계도 단계적으로 구축되고 있다.
또 다른 패널인 폴라리스쉬핑 이명호 부장은 "북극항로는 기존 수에즈·파나마 항로보다 운송거리가 30%가량 단축되고, 연료비와 온실가스 배출량도 15~20% 이상 줄어드는 '환경·경제 복합효과'를 지닌다"며 "부산항이 이 항로의 아시아 기점이 되면 해운·조선업 전체의 구조 자체가 재편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논리만으론 안 된다"… 항만의 철학을 묻다
포럼의 중심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북극항로는 기회의 뱃길인 동시에 인류의 책임을 묻는 경로"다.
송상근 부산항만공사 사장과 조정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은 이를 강조했다.
송 사장은 "기후변화가 연 북극항로는 기회이자 경고이며, 이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활용하려면 IMO, 북극이사회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이 필수"라며 "부산항은 친환경 연료 공급, 극지 항해 대응 인프라, 해운 데이터 분석체계까지 종합적 대응능력을 갖춘 항만"이라고 밝혔다.
조정희 KMI(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은 "러시아, 미국, 북유럽 국가들은 이미 북극항로를 국가전략의 일부로 접근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전략적 공간으로 인식해야 할 때"라며 "기술·정책·외교력을 동시에 갖춰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산·학·연·관이 머리를 맞댄 시간… 부산, 세계를 향해 묻다
이번 포럼은 단순한 발표회가 아니라, 산·학·연·관이 복합적으로 머리를 맞댄 전략 조율의 장이었다.
홍기용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소장을 중심으로, 정성엽 박사(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최중효 책임연구원(한화오션), 홍성원 교수(영산대학교)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기술과 정책, 국제규범과 산업현장을 연결하는 논의를 펼쳤다.
참석자들은 "친환경 선박 개발을 넘어, 북극항로 전용 기자재, 데이터 기반 항로 설계, 복합물류체계까지 아우르는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일 부산에서 열린 친환경 북극항로 포럼. 부산항만공사 제공부산항이 단순한 물류 창구를 넘어 글로벌 녹색 해운의 '전략 허브'로 진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데 공감이 모였다.
정치적 공약에서 정책 실행으로… '부산 리디자인' 시동
이번 포럼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실행으로 옮겨지는 첫 현장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는 선거 기간 "북극항로 전담 비서관 신설"과 "부산항 북극항로 중심기지화"를 약속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열린 포럼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국정 아젠다 실행의 신호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포럼에서 논의된 정책 방향과 전략은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을 통해 제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은 지금, 단순한 물류 도시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의 글로벌 해운 수도로 거듭나고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기회는 오고 있다. 우리는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날의 포럼은 이에 대한 부산의 첫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