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부부의 간절함, 부산시 정책 이끌다" 전국 최초 난임 바우처 사업(종합)

"난임부부의 간절함, 부산시 정책 이끌다" 전국 최초 난임 바우처 사업(종합)

부산지역 난임부부 카페 회원들 정책제안 나서
부산시, 시민 청원 통한 제안 내용 면밀히 검토
난임 시술비, 주사제 투약비용 등 지원

부산에서 난임으로 고생하고 있는 부부들이 직접 부산시의 정책 지원을 이끌었다. 부산시는 오는 7월부터 난임지원 바우처 제도를 실시한다. 이는 전국 최초다. (부산 CBS)

 

부산에서 난임으로 고생하고 있는 부부들이 직접 부산시의 정책 지원을 끌어냈다.

현실을 외면한 출산 정책에 대한 냉혹한 지적, 정확히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정책 제안, 집단행동에 나선 결과 전국 최초로 난임지원 바우처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은 민선 7기 들어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을 만들겠다'는 시민청원 게시판 'OK 1번가'를 통해 한달여 만에 이뤄져 의미를 더하고 있다.

◈ 간절함이 정책을 만들다

"제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돌잔치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먹다가도 돌잔치 당사자의 성장 동영상이 나오면 저희 부부는 하염없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됩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영상이 끝날쯤 돌아갑니다. 저도 저런 아이가 간절히 갖고 싶습니다. 남들처럼 어린이날 놀이동산도 가족모임에 데려가고 싶습니다"

7일 오전 부산시청 기자회견장.

오거돈 부산시장이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난임 지원 정책을 설명한 뒤 김민정(42)씨가 자신의 남편이 오 시장에게 쓴 편지를 덤덤하게 읽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회견장에 같이 온 또 다른 난임치료 여성들도, 공무원들도 눈물을 터트렸다.

결혼한 지 10년째 접어든 김씨는 아이를 갖기 위해 5년째 난임시술을 받고 있다.

난임시술 7차에 접어든다. 차수 때마다 들어가는 돈은 4~5백만원.

8주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

때문에 관공서 화장실이나 마트 수유실까지. 때와 장소를 가릴 수 없다.

난임 부부들은 스스로를 '주사 난민'이라고 부른다. 임신을 위해 번듯하고 안정된 직장도 그만두고 대출까지 받았다.

김씨와 같은 사례는 많다. 부산시는 신혼부부의 14%가량이 난임으로 보고 있다.

◈ 정책제안이 만들어 낸 '시민의 힘'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이유는 3월 28일로 거슬로 올라간다.

이날 김씨는 부산시청 청원 게시판인 'OK1번가 시즌2'에 '초저출산시대 임신준비여성이 부산시에 제안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글은 저출산 극복을 위해 보건소의 기능을 강화해 AMH(난소나이검사), 정액 검사를 실시할 것과 일선 보건소에서 난임주사 투여가 가능하도록 검토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글은 게시한 지 일주일 만에 최단기간 공감 2천여건을 돌파해 3천166건을 기록했다.

부산시의 정책 추진을 촉구하는 댓글도 천여개 넘게 달렸다.

OK1번가 청원은 접수일로부터 30일간 300명 이상의 공감을 받으면 청원으로 성립된다. 이 가운데 공감수가 3천명이 넘어서면 시장이 직접 답변하게 돼 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글이 게시된 지 보름 만에 동영상을 통해 '직접 난임 정책을 챙기겠다'고 답했다.

이후 부산시는 관계기관 긴급회의를 열고 부산시 차원에서 당장 실시할 수 있는 직접적인 사업을 검토한 결과 '난임 극복 바우처 사업'을 시행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 모임 '불임은 없다 아가야 어서 오렴' 회원들은 적극적인 의견 개진에 나섰다.

부산시 담당 부서와 수시로 연락을 하며 진행상황을 지켜보는가 하면, 오거돈 부산시장과 면담 촉구, 정책제안, 난임부부의 염원을 담은 편지 전달에 나섰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 부산시 전국 최초 '난임 지원 바우처'실시

부산시가 7월부터 시행하는 '난임 지원을 위한 바우처' 제도는 전국 최초다.

△소득과 관계없는 난임 시술비 지원 △난임 주사제 투약 비용 지원 △난소나이 검사비용 지원 등이 골자다.

대상은 부산지역 30여개 의료기관에서 시행하는 체외수정, 인공수정 등 난임 시술로, 이때 발생하는 본인부담금을 부산시에서 지원한다.

지원 규모는 1회 최대 50만원 한도에서 1인당 10회까지다. 최대 5백만원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주사제를 투약할 때 발생하는 본인부담금도 최대 8주간 56만원까지 지원한다.

부산시는 보건소에서 주사제를 투약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안전성과 보건소 인력 확보 문제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신 대상자가 안심하고 편리하게 의료기관을 이용해 주사제를 투약할 수 있도록 300여 의료기관과 업무협약을 하고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난임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난소 나이 검사를 할 때도 본인부담금을 지원하기로 하고 부산지역 75개 의료기관과 협약을 추진한다.

결국 난임시술, 치료 등에 투입되는 비용 부담이 4분의 1수준으로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한 시민의 정책 제안 이후 부산시의 정책 검토, 지원 대책이 마련되기까지 4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부산의 출산율이 전국 최저 수준이다. 이번 대책이 출산율을 높이고 난임부부의 어려움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지 못하지만 앞으로 시가 적극적인 난임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말했다.

난임여성 A씨도 "아직도 우리 사회는 '난임'보다는 '불임'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임신하려고 노력하는 부부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때문에 난임부부들은 계속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이번 부산시의 지원은 난임부부의 어려움과 고통을 알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이같은 정책이 난임부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난임 관련 정책 확대로 이어져야 진정한 의미에서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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