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출국장. 황진환 기자경찰이 부산지역 기초의회들의 국외연수와 관련해 전방위 수사를 벌이는 가운데, 일부 의회가 연수를 강행해 논란이 인다.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은 행보라는 비판이 나온다.
출장비 부풀리고 비용 대납 정황…권익위 의뢰로 수개월째 수사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3월 부산지역 일부 기초의회에서 국외연수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 위법 소지가 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주로 의원들이 국외연수를 가는 과정에서 의회 직원 몫인 비용을 일부 대신 내주거나, 공무원들이 출장비를 부풀려 청구한 정황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개월 간 수사를 진행 중인 부산경찰청은 최근 기초의원 수십 명이 실제로 의회 직원의 출장 비용을 대납한 정황을 포착하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또 출장비를 부풀린 정황에 대해서도 의회 공무원이나 여행사 관계자를 사기,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의원이 비용을 대납한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른 부산지역 기초의회는 현재까지 모두 5곳이다. 또 공무원이 출장비를 과다 청구했다는 혐의를 받는 의회는 6곳에 달한다. 수사 대상자 중에는 실제 형사 입건된 사람도 있는 상황이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공직선거법 위반 등 소지가 있어 조사하고 있다. 일부 의회는 관련자를 입건해 수사를 착수한 상태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라고 말했다.
출석 통보에 '화들짝'…부산 기초의회 대부분 예산 반납
수사 대상에 오르거나 경찰로부터 출석 통보를 받은 의회들은 부랴부랴 계획했던 국외연수 일정을 취소하고 있다.
기장군의회는 6일부터 12일까지 6박 7일 일정으로 국민의힘 의원 5명이 일본 오이타현과 중국 상하이로 국외연수를 떠날 예정이었다. 노인 복지 시설을 방문해 고령사회 대응 정책을 연구하고, 지역 간 교류를 추진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출국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9일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국외연수를 취소한 이유에 대해 기장군의회는 '내부 사정'이라며 말을 아꼈지만, 국외연수를 둘러싼 경찰 수사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 기장군의회 관계자는 "최근 의원들이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수년 전 국외연수 때 추가 비용을 의원들이 낸 게 문제가 됐다"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알 수 있지만, (연락을 받은 뒤) 의원들이 국외연수에 부담을 느낀 분위기"라고 말했다.
연제구의회도 오는 10일부터 15일까지 의원 15명이 교류 증진, 연제만화도서관 이용 활성화 명목으로 일본으로 국외연수를 떠날 계획이었지만, 지난달 31일 돌연 취소했다. 연제구의회는 항공권 등 '출장비 부풀리기' 의혹으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들은 지방세 수입 감소를 고려해 출장 예산을 전액 반납했다고 설명했다.
부산 16개 구·군 기초의회 가운데 올해 공무국외연수 예산을 반납했거나 반납할 예정인 곳은 모두 12곳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민생 회복 동참 차원에서 예산을 반납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일부는 경찰 수사선상에 오르거나 의원들이 소환 통보를 받은 곳들이다.
기초의회 자료사진(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부산 북구의회 제공일부 의회 '그래도 간다'…"시민 눈높이 벗어난 행보" 비판
이렇듯 기초의원 국외연수 '줄취소'가 이어지고 있지만, 일부 의회는 문제될 게 없다며 국외연수를 다녀왔거나 갈 예정이다.
수영구의회 의원 6명은 지난 5일 이탈리아로 출국해 7박 9일 간 예산 4700만 원을 들여 국외연수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중구의회 의원 5명도 다음 달 14일부터 20일까지 도시재생 정책 연구를 명목으로 오스트리아로 연수를 갈 계획이며, 예산은 3천만 원이다. 동래구의회는 지난 9월 미국 뉴욕과 캐나다 퀘벡을 다녀왔으며, 사하구의회도 지난달 말 베트남으로 연수를 다녀 왔다.
이들은 규정 상 별다른 문제가 없어 계획했던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부산 수영구의회 손사라 의장은 "지난해 문화도시로 지정된 수영구가 홍보를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에 팝업스토어를 여는데, 의회도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동참하기 위해 출장을 추진한 것"이라며 "그동안 정해진 경비 안에서 출장을 다녀왔고, 의회 직원 경비를 의원이 대신 내준 적도 없다. 올해 초 권익위 권고대로 관련 조례도 개정해 문제될 부분이 없다"고 해명했다.
시민단체는 지역 기초의회가 대거 국외연수로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연수를 강행하는 건 시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보라고 비판했다.
부산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기초의회가 잇따라 수사선상에 오른 상황인데도 시민 눈치를 보지 않고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채 국외연수를 가는 건 부적절하다"며 "경기가 침체되고 계엄 사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실정에서 기초의원들이 해외에 나가 뭘 배워오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시민 눈높이에 맞는 자성과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