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화재 참사가 발생한 부산 기장군의 한 아파트 외벽 등이 검게 그을린 모습. 김혜민 기자부산에서 화재로 잇따라 참변을 당한 어린 자매들은 주민 누구나 자동 가입되는 시민안전보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사각지대'를 해소할 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 2일 부산 기장군 기장읍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8살과 6살 난 자매는 기장군의 군민안전보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앞서 지난달 24일 부산진구 개금동 아파트 화재로 참변을 당한 10살, 7살 자매 역시 부산진구 구민안전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 기장군 관계자는 "화재사고로 인한 사망은 군민안전보험 보장 항목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15세 미만은 사망보험 계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자매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며 "대신 긴급 생계비와 구호물품, 심리상담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자체가 무료로 제공하는 시민안전보험은 예기치 못한 각종 재난과 사고로 생명·신체 피해를 겪은 시민들에게 일상 복귀를 돕기 위해 보험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주민이라면 누구나 자동 가입되지만, 15세 미만 희생자는 제외된다. 상법 제732조에 따라 15세 미만을 피보험자로 한 사망보험계약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아동을 해치는 등 악용 사례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해당 조항 때문에 이번 참사처럼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게 맹점으로 남아 있다. 같은 문제는 2022년 이태원 참사와 2023년 태풍 힌남노, 지난해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는 상법 개정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제21대 국회에서 지자체나 학교가 가입한 단체보험에 대해서는 15세 미만에게도 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지난달 24일 부산 부산진구 아파트 화재 현장.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제22대 국회에도 관련 법안은 발의돼 있다.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것과 같은 내용으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 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 등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 그러나 지난해 발의한 법안이 아직 법제사법위원회에 머물러 있는 등 개정 움직임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상을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해 이 제도가 실질적인 안전망으로 작동하게 하려면 법 개정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민심 이동균 변호사는 "법률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는 계약으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특약 형태로도 사망 보장을 추가할 수 없다.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게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라며 "시민안전보험의 경우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안전을 위한 제도인 만큼 고의성 등이 없다는 전제하에 예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상법 조항은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만들어져 필요한 규제이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그림자 또한 짙어지고 있다"며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비극적인 사고로 고통받는 유가족에게 최소한의 위로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책임 있는 결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