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도 모르는 아동안전지킴이집…"숫자보다 내실 다져야"

당사자도 모르는 아동안전지킴이집…"숫자보다 내실 다져야"

업주 구체적 대응법 모르고, 아동들도 위치 몰라
행안부 평가에 개수 포함돼…부산경찰청 "적극 확충"
전문가 "정기 교육, 맞춤 홍보 등 제도 내실화 필요"

부산의 한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아동안전지킴이집 표시가 판매물품 등에 가리거나 빛이 바래 잘 보이지 않는 모습. 정혜린 기자부산의 한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아동안전지킴이집 표시가 판매물품 등에 가리거나 빛이 바래 잘 보이지 않는 모습. 정혜린 기자학교 근처 가게 등이 위기 상황에서 아동을 보호하는 '아동안전지킴이집' 제도가 시행 중이지만, 당사자인 아동과 업주들은 존재나 역할을 잘 모르는 실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올해 지킴이집 수를 대폭 늘려 기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지만, 숫자보다 내실을 다지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일 오후 부산 사하구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 가게 바깥에 내걸린 축구공과 훌라후프 등 판매용품 사이로 빛바랜 아동안전지킴이집 스티커가 유리창에 붙어있다.
 
사상구 한 초등학교 인근 가게에도 아동안전지킴이집 표지판이 외벽에 붙어있지만, 다른 광고 등과 함께 부착돼있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게 주변을 지나는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아동안전지킴이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학교에서 들어본 적 있다는 몇몇 학생들도 실제로 주변에 어디에 있는지 묻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표지판을 본 적이 있다는 학생도 찾기 힘들었다.

'아동안전지킴이집'으로 지정된 가게를 운영하는 업주들 역시 구체적인 대응 방법 등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아동안전지킴이집 지정 가게에서 근무하는 박모(30대·남)씨는 "그냥 보호하고 경찰서에 연락하면 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대응 매뉴얼을 따로 받지는 못해 구체적인 건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동안전지킴이집 업주 역시 "다친 애들 오면 상처 치료해주면 되지 않냐"고 되물으며 "근무자가 계속 바뀌다 보니 대응 책자를 받은 게 있는지, 따로 경찰이 왔다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부산의 또 다른 아동안전지킴이집. 내걸린 축구공 사이로 겨우 보이는 아동안전지킴이집 스티커 일부가 손상됐다. 정혜린 기자부산의 또 다른 아동안전지킴이집. 내걸린 축구공 사이로 겨우 보이는 아동안전지킴이집 스티커 일부가 손상됐다. 정혜린 기자지역사회와 경찰이 협력하는 아동 보호제도인 아동안전지킴이집은 2008년부터 올해로 17년째 시행되고 있다. 초등학교 주변에 위치한 문구점과 편의점 등을 아동안전지킴이집으로 지정해, 위험에 처한 어린이를 임시로 보호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역할을 한다.
 
경찰과 지역사회가 아동 보호에 함께 나선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장 상황은 고려치 않고 행정적인 이유로 개수만 늘리는 실정이라는 비판이 경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기존 아동안전지킴이집도 현장에선 취지대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보기 힘든데, 일선서마다 각각 정해진 수만큼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역안전지수에 안전지킴이집 개수가 포함되다 보니 점수를 높이기 위해 개수를 늘리려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부산경찰청은 올해 부산지역 내 아동안전지킴이집 개수를 대폭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기존 345개소에 더해 올해 안에 부산전역에 아동안전지킴이집 240여개소를 추가로 위촉한다는 계획이다. 행정안전부 지역안전지수 평가 항목에 아동안전지킴이집 개소 수가 포함되는데, 부산은 인구 1만 명 당 개수가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 실정이어서 적극적인 확충이 필요하다고 부산경찰청은 설명했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앞 편의점에 아동안전지킴이집 표시가 붙어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모습. 정혜린 기자부산의 한 초등학교 앞 편의점에 아동안전지킴이집 표시가 붙어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모습. 정혜린 기자전문가들은 단순히 개수를 늘리는 것보다 업주 대상 체계적인 교육과 아이들 맞춤 홍보 등 제도 내실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제도가 만들어진 뒤 세월이 흐른 만큼, 변화한 환경에 맞춰 제도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한다.
 
최종술 동의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후속 조치가 없으면 형식적인 제도가 될 뿐이다. 실제로 적극적인 치안 활동이 가능하도록 업주를 모아 정기적으로 체계적인 대면 교육을 하거나, 아동지킴이집 위치 지도를 만드는 등 아이들 맞춤형 교육과 홍보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휴대전화를 소지한 아이들이 늘어난 만큼, 직접 신고할 경우 가까운 안전지킴이집에서 바로 현장 확인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 업주와 경찰, 아동 간에 긴밀한 연락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라며 "업주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학부모회와 지역 봉사단체 등의 지원책도 모색해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숫자 늘리기에 치중한다는 지적에 대해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주기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일선 경찰서에서 직접 찾아가 교육이나 간담회를 하고, 학교전담경찰관이 아동 대상 홍보도 하고 있다"며 "자원봉사 개념이라 운영자에게 적극성을 요구하기는 어려우나, 생업에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지속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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