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난 불로 아파트 외벽 등이 검게 그을린 모습. 김혜민 기자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어린 자매가 숨진 참사가 9일 만에 또다시 발생한 가운데 경찰도 정확한 화인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이어 발생한 두 화재 사건 모두 발화점이 멀티탭(멀티콘센트)으로 지목되면서 가정 내 안전 관리에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 부산 기장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는 화재로 숨진 자매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진행되고 있다. 경찰은 자매에게 화상 외에 별다른 외상이 없어 다량의 연기 흡입이 주요 사망 원인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앞서 지난 2일 오후 11시쯤 기장군 기장읍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8살 A양과 6살 B양 자매가 숨졌다. 이번 화재와 관련해 전날 진행된 1차 합동 감식에서는 불이 거실 에어컨 주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당시 거실에 연결된 2구짜리 멀티탭에는 에어컨과 실외기가 연결돼 있었는데, 이 멀티탭 전선에서는 단락흔(끊어진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사고 당시 "에어컨이 가동 중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해 국과수에 거실에 있던 에어컨 등에 대한 정밀 검사를 의뢰해 둔 상태며, 다음 주 중으로 2차 합동 감식을 예고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부산 기장경찰서 관계자는 "국과수 부검 결과, 1차 소견에서는 다량의 연기 흡입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추후 혈액 검사 결과 등도 받아보는 대로 종합해 판단할 예정"이라며 "벽면 콘센트에 연결된 멀티탭 전선에서 단락흔이 발견돼 발화 지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2차 합동 감식 등을 통해 구체적인 화인을 규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부산 기장군 기장읍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내부가 소실된 모습.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부산에서는 멀티탭에서 시작된 화재로 어린 자매가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앞서 지난달 24일 부산진구 개금동의 한 아파트에서도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불이 나 10살과 7살 난 자매가 숨졌다.
당시에도 유관기관 합동 감식 결과, 발화점이 거실에 있던 멀티탭으로 추정됐다. 해당 멀티탭에는 컴퓨터 등 전자기기 전선원이 연결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잇따라 어린 자매의 목숨을 앗아간 두 화재의 원인이 모두 멀티탭과 연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가정 내 멀티탭 과열 등 전기적 요인으로 인한 화재 관리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부산의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2만 3547건의 화재 가운데 29.6%에 달하는 6971건이 멀티탭과 콘센트 등 전기적 요인으로 발생했다. 이는 부주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화재 원인으로 기록됐다.
전기적 요인 가운데 콘센트로 인한 화재는 최근 5년 사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20년 396건이었던 부산의 콘센트 화재는 2022년 435건, 지난해 504건으로 5년 만에 27%가량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멀티탭을 사용할 때 소비전력이나 교체 주기 등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전자기기를 동시에 연결할 경우 과열로 인한 화재 발생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전류가 과도하게 흘러 최대 허용 전력량을 초과하면 전선이 과열돼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최태형 교수는 "전자기기마다 전하량(전기의 양)이 모두 다른데 하나의 멀티탭에 여러 가지 전자기기의 전하량이 많아지면 과부하로 화재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며 "가정에서는 하나의 멀티탭을 고정된 장소에서 수년간 지속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노후화되거나 장기간 먼지가 쌓이고 습기가 유입되는 등 관리가 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방당국은 멀티탭과 콘센트는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만큼 올바른 사용과 주기적인 관리를 통해 화재를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먼지나 물기가 유입되지 않도록 주변을 관리하고 접촉 불량 등이 발생하지 않는지 주기적으로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게 소방당국 설명이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에어컨 등 전력 소모가 높은 기기는 반드시 멀티탭이 아닌 별도 콘센트에서 따로 사용해야 한다"며 "만약 부득이하게 멀티탭을 사용해야 할 경우 고용량과 자동 누전 차단 기능이 있는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