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구 청학동 주택가 일대 빈집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했다. 정혜린 기자부산 영도구 한 지역주택조합 사업 예정지에서 빈집 화재가 잇따라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방화가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지만, 경찰과 지자체는 현실적 이유를 들며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평일 오전 부산 영도구 청학동 한 주택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유리창이 깨지거나 문이 떨어져 나간 집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집 안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거나, 불에 타 새까맣게 그을린 흔적이 보였다.
이 주택가에서는 올해 들어 한 달에 한 번꼴로 불이 났다. 1월 22일과 2월 20일, 3월 20일과 4월 30일 네 차례 발생한 불은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인접한 빈집에서 발생했다.
이곳 일대는 지난 2017년부터 493세대 규모 아파트를 짓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이 떠나고 빈집이 늘어났다. 하지만 사업이 답보 상태에 빠지면서 빈집이 수년째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10세대가량이 여전히 거주하고 있는데,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빈집 화재가 잇따르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일부 주민은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지르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정모(64·여)씨는 "지난 1월 옆집에서 난 불 때문에 지붕 쪽 스티로폼이 조금 탔다. 이 동네에 60년 살았는데 요즘처럼 이렇게 불이 자주 나는 건 처음 겪는 일"이라며 "처음엔 경찰이 '쌓인 쓰레기에서 저절로 불이 날 수 있다'고 해서 수긍했는데, 한 달 간격으로 계속 불이 나니까 너무 이상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부산 영도구 청학동 주택가 일대 빈집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했다. 정혜린 기자주민 이호선(66·여)씨도 "이상하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주변으로 계속 불이 난다. 맞닿은 집에서 '펑!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불이 났는데, 집에 가스통이 2개나 있어 큰일 날 뻔했다"며 "분양받은 사람들이 아파트가 안 지어지니까 화가 나서 그랬다거나, 조합 측에서 주민들 내보내려고 일부러 그랬다는 소문까지 나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대원(57·남)씨 역시 "우리 집에도 누군가 불을 지르진 않을까 불안해서 외출할 때 창문까지 다 잠근다"며 "보상 문제 때문에 누가 불을 지르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경찰은 빈집이어서 재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재 원인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부산 영도경찰서 관계자는 "빈집 화재와 관련해 현재 방화 등 혐의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는 건 없다. 화재로 인해 재산상 피해나 인명피해가 발생해야 수사하는데, 빈집이어서 쓰레기 정도만 타고 피해가 없어 공공의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주민들은 영도구청에 폐쇄회로(CC)TV 설치 등 화재 예방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구청 역시 지역주택조합 측에 대책 마련을 요청하는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다.
영도구청 관계자는 "CCTV는 1년 예산이 정해져 있어 당장은 설치가 어렵다. 주민 면담 이후 지역주택조합 측과 대책 회의를 열어 철거 동의를 받은 집은 우선 철거하거나 출입 차단, 순찰 강화 등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이 지역주택조합 구역으로 묶여있는 탓에 구청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