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 어선원 보상 "법대로 한다"는 수협…사회적 책임 잊었나

난청 어선원 보상 "법대로 한다"는 수협…사회적 책임 잊었나

수협, 산안법 근거로 "사업주 측정 업종 아냐…개인이 해야"
법조계 "국민 혈세 투입된 기금…책임 외면하고 있어"
소방·해경은 '직접 측정값' 대신 연구자료 등으로 갈음
의료계 "표본 측정치로 난청 '의학적 판단' 가능"

대형선망 어선. 자료사진대형선망 어선. 자료사진'난청 어선원' 재해 보상을 담당하는 수협이 입증 자료인 '선박 소음 측정값'을 개인이 제출하도록 지침을 바꾼 데 대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관련기사=CBS노컷뉴스 04.15 '난청 어선원' 재해보상 막히나…"소음 측정해 오라"는 수협]

수협 측은 법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연구 자료 등으로 난청 재해를 인정하는 다른 직군 사례나 의학적 판단으로도 충분하다는 의료계 의견 등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어쩔 수 없다"는 수협…"사회적 책임 외면" 비판

 
수협중앙회는 지난 7일 어선원 재해보상보험과 관련해 '소음성 난청 재해보상 실무 지침'을 개정했다. 보상을 신청하는 선원 개개인이 선박 소음을 측정해 '작업환경 측정' 결과를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기존에는 수협 측이 어선 11척에서 측정한 결과를 기준으로 재해 보상에 적용해 왔지만, 표본이 적어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든다.

여기에 더해 수협은 법적인 이유로 지침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작업환경 측정'을 해야 하는 업종을 규정하고 있는데, 어업·선박은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선주들에게 측정을 요구할 수 없어 선원 개인이 소음을 측정해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어업에 적용되지 않는 문제기 때문에 법에 따라 보상을 집행해야 하는 입장에선 어쩔 수 없다. 상급 기관에 관련한 입법 건의를 해 둔 상태"라며 "수협에서 측정하는 것도 법적 근거가 없고,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어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법의 미비'를 이유로 개인에게 책임을 오롯이 전가하는 행태라고 비판한다. 재해를 보상하는 기관에서 개인에게 이런 측정을 요구하는 사례가 없을뿐더러, 선원이 직접 측정하는 건 현실을 외면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또 수협 측의 이런 지침 개정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설립 목적과 의무를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수협은 수산업 보호와 어업인 권익 강화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런 이유로 해양수산부로부터 어업인 재해 보상 업무를 위탁받은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선원들의 보상 신청을 대리해 온 이재수 공인노무사는 "수협은 개인이 제출하기 어려운 자료를 요구해 재해보상 신청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침을 바꾸고는, 해당 자료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조차 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법의 미비를 이유로 들어 입법적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그 책임을 재해자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선원 및 어선재해보험 보험료에 대한 선박 규모별 국고보조율 현황. 수협중앙회 홈페이지 캡처어선원 및 어선재해보험 보험료에 대한 선박 규모별 국고보조율 현황. 수협중앙회 홈페이지 캡처더욱이 '어선원 재해보상보험 기금'의 상당 부분은 정부·지자체 보조금, 즉 혈세로 이뤄져 있다. 수협은 보험에 가입한 선주로부터 보험료를 납부받는데, 이 보험료는 선박 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국비 15~71%, 지방비 20~30%가 지원된다. 즉 국민의 혈세로 이뤄진 기금을 운영하면서 보상이 필요한 어선원들에게 불합리한 조건을 요구한다는 지적이다.

조애진 변호사는 "입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은 더 이상 논의를 발전시킬 의사가 없다는 무책임한 대응 모습이다. 국민의 혈세를 투입한다는 건 어선원 재해에 대한 보상을 사회가 함께 부담한다는 사회적 합의인데 이를 저버린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탑승 어선 소음 수치' 꼭 필요한가…소방·해경은 '연구자료' 참고

 
어선원과 마찬가지로 난청에 노출된 환경에서 근무하는 소방관이나 해양경찰 등 다른 직군에서는 실제 근무 현장의 소음을 측정하기 어려운 경우 연구 논문 등 참고 자료를 이용해 소음을 입증하고 있다.
 
소방관은 사이렌·장비에 대한 규격상 데이터베이스, 연구자료 등과 실제 화재 현장에 대한 논문에 더해 관련 연구자료도 소음 측정 자료로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경찰관의 경우 함정소음 연구보고서를 참고해 승선했던 함정과 동급 함정 기관실의 소음 수치를 통해 소음 측정치를 증명하기도 한다. 소방관과 해경은 공무원연금공단에 이런 서류를 근거로 제출해 인사혁신처가 재해 인정 여부를 심의한다.

어선원 및 어선재해보험 홍보 포스터. 수협중앙회 홈페이지 캡처어선원 및 어선재해보험 홍보 포스터. 수협중앙회 홈페이지 캡처'어선원 및 어선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도 재해 발생 경위와 의학적 소견을 통해 급여 지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경우, 어선의 작업 환경 또는 유해·위험 요인 확인 서류를 첨부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수협은 난청의 경우 직업환경의학과에서 '의학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소음 수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해당 단서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재해보험법이 소음성 난청 인정기준을 '85db(데시벨) 이상 소음에 3년 이상 노출될 경우'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장의 소음값이 없으면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들은 어선원이 실제로 근무한 선박의 구체적인 소음값이 없더라도, 비슷한 환경에 있는 어선의 소음 측정치를 참고해 의학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제대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정호 교수는 "반드시 개인이 승선했던 특정 배가 아니더라도 유사한 어선의 소음 측정 자료가 있다면 충분히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개인이 탔던 모든 어선마다 소음을 측정하기 어려움이 있다. 수협에서 선박 규모와 종류 등 범위를 확대해 소음을 측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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