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확대에 대한 학교현장의 생각을 말하다" 권혁제 정관고 교장

"정시확대에 대한 학교현장의 생각을 말하다" 권혁제 정관고 교장

권혁제 정관고 교장(사진=부산CBS 박창호 기자)

 

교육부가 지난 11월 28일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정규교과과정이 아닌 비교과활동을 대입에서 폐지하고 학종과 논술위주전형으로 쏠림이 있는 서울지역 16개 대학에 수능위주전형을 40% 이상 확대, 사회적 배려대상자 선발 10% 이상 선발 권고 등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교육부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의혹이 불거진 지 거의 100일만에 나온 것으로 잦은 입시제도 변경에 따른 교육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긍.부정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부산시교육청 진로진학지원센터 센터장과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총괄위원회 위원,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부산지역 학생들의 진로진학 상담의 베테랑으로 명성을 떨치다가 2018년 부산시 기장군 '정관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권혁제 교장'을 만나 '대입제도의 공정성 강화 방안의 장.단점'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질문 1) 교육부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요?
​-이번 교육부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은 공식적인 국가의 교육정책인데 일부 서울지역 대학을 타킷으로 국한되는 것이어서 잘못됐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교육정책은 모든 학생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데 교육부와 청와대가 주도하면서 공론화를 위한 절차를 밟지 않은채 특히 제일 중요한 학교현장의 얘기에 귀기울지 않고 이론에 맞춰 내놓은 탁상공론식 해법이었다. 특히 정부가 입체적으로 보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쉽다.​

무엇보다 교육정책은 어떤 철학이 아닌 여론을 갖고 바꾸면 안된다. 국가 미래가 달려 있는 학생들의 교육 역량을 키우지 못하고 지식 위주의 수능 정시강화로 가는 정책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에도 문제가 있지만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었기에 점진적으로 문제를 개선해나가면 될 것을 이렇게 급하게 선회하는 것은 악수다. 그래서 너무 답답하다.​

질문 2) 서울지역 16개 대학 중심으로 논술전형과 특기자전형을 수능위주로 전환해 수능위주전형을 40% 이상 확대하기로 했는데 먼저 어떤 점이 우려되나요.
​- 수능 40% 확대는 현재 고교교육 과정과 불일치하는 정책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2015년 개정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 핵심은 창의융합형 인재육성과 학생선택형 교육과정이다.

하지만 수능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선택 과목이 정해져 있기에 학생들은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고 다양한 과목을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되면서 수능 과목에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애초 목표한 교육정책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그래서 현재 진행중인 개정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고 본다.

또 교육부는 2021년까지 미래교육을 담아낼 새로운 수능체계를 마련해 현 초등학교 4학년이 대학에 진학할 2018년도 대입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2028년 대입을 설계하겠다는 의도로, 결국 현 대입체제는 미래교육을 담아낼 수 없는 미봉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질문 3) 정시 확대에 따른 예상되는 부작용은 무엇인지요.
- 수시에서 정시로 최저학력기준 미달 등으로 정시로 이월되는 10% 정도의 학생들을 포함하면 사실상 정시는 50%로 확대된다고 볼 수 있다.

독서와 봉사활동을 대입 성적에 반영함으로써 기아체험을 통해 사회기여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되고 억지로라도 책을 읽어 생각이 바뀌는 학생들의 교육적인 체험과 변화가 있다.

이런 긍정적인 교육적 의미를 살려야 하는데 부정적인 면이 조금 나왔다고 해서 방향을 급선회하면 안된다.

학교 현장에서는 그동안 수시가 확대되면서 토의.토론 수업이 활성화됐다. 그런데 수능이 확대되면 문제풀이와 정답찾기 수업으로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창의융합형 인재육성은 서술형 평가가 가능한데 수능은 5지선다로 다양한 자기 생각과 창의성을 표현하기 어렵다.

예를들어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가 아닌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답이 나올 구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사고가 고착화되면서 예측 불가능하고 열린사고가 필요한 미래사회의 인재가 될 수 없기에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수능은 연습과 반복 효과가 확실하다. 그래서 사교육 시장에서 더 연습하고 반복학습을 함으로써 성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반수생과 재수생이 늘어나고 사교육이 확대되고 재수종합반이 부활할 것이다.

질문 4) 정시 확대로 지역대학에 어려움이 예상된다죠.
​-지역 인재 역외유출로 지역대학들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부산대 등 지역 거점대학에 갈 학생이 정시 확대로 ​수도권 진출을 위해 재수나 반수를 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역 거점대학들도 서울지역 대학과 인재를 뺏기지 않으려고 정시를 확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서울의 상위권 16개 대학에 가려면 학생부종합전형 내신에서 2-3등급이 나와야 했다.

그런데 정시 확대로 인해 통로가 좁아지면서 내신 등급이 올라가 학종 1-2등급으로 상향되게 되면 내신 3-4등급 학생들은 내신을 극복하고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정시에 올인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정시 확대로 인해 수능 점수대로 대학의 서열화가 더 강화되고 학생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지역 대학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지역 대학들은 학생들이 재수를 위해 합격하고도 등록을 안하거나 반수를 선택할 경우 모집 정원의 미달사태가 예상된다. 학생 충원이 80~90%에 머물게 되면 지역 대학들은 수시를 확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시에 모집할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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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비교과부문의 폐지나 축소가 학교현장에 어떤 부작용을 낳을까요.
​-학교현장의 교사 입장에서 가장 뼈아픈 부분은 수상경력과 독서활동을 폐지한 것이다.

수상경력 미반영은 학생에게 칭찬과 격려를 함으로써 생기는 수상의 교육적 효과를 무시한 것이다. 또 독서활동의 미반영은 전공적합성과 지적 역량 등을 향상시키는 독서의 중요성과 효과를 무시해버렸다.

개인 봉사활동 실적을 대입에 반영하지 않음으로써 향후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봉사활동의 중요성이 증가하게 되고 학교가 봉사활동을 설계하게 되면서 학교간 차이가 발생하고 교사들의 업무가 증가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학종 3등급이 나온 학생도 이른바 서울의 SKY 대학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비교과 활동을 없애고 나면 공식적인 학교 운영이 안되고 자율활동 시간에는 동아리 활동이 아니라 정시에 대비한 문제풀이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내신의 영향력이 커지고 학생들간에 경쟁이 심해지면서 협력해서 학습이 어려워지고 교실분위기는 더 삭막하게 될 것 같다.

질문 6)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의무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학교생활기록부에서 학업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하지만 이를 의무화한다면 시수가 작은 선생님은 한 명이 300여명의 학생을 모두 기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수업시간에 주로 자고 엉뚱한 것만 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학교마다 학생마다 형편과 처지가 다르니 현행 처럼 그래도 특징이 나타나는 학생들 위주로 기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질문 7) 사회적 배려 대상자 선발을 10% 이상 의무화는 것이 왜 지역대학에 불리한가요.
​-사회적 배려대상자는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농어촌 학생, 장애인 등을 말하는데 서울 주요 대학이 주로 농어촌 학생을 뽑아갈 것이다. 지금은 그 비율이 안정해져 있다.

결국 지역 대학이 흡수해야 할 지방인재가 서울로 뺏기게 되는 부작용에 대한 고려를 정부가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원외 특별전형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예상된다. 지방 특성화고 학생이나 직장 재직자 특별전형도 지역 대학의 정원을 채우지 못한채 수도권 쏠림 현상을 더 심화할 것이다.

질문 8)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죠.
​-교육철학이라 하기는 그렇습니다만 교육은 인성과 실력을 갖추어 학생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오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학교,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가꾸어 가는 것이 소망이다.

그리고 정시가 확대되고 지역 대학들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가운데 현재 지역 대학들이 각자도생에 들어가 협력을 안하고 있어 안타깝다.

부산대 부경대, 동아대 등이 예전에는 공동 입시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서로 협력을 통한 시너지를 시도했으나 지금은 외면하고 있다.

지역의 4년제 대학들 뿐아니라 전문대를 포함해 서로 논의하고 협력해 제살깎기식의 무분별한 학과 증설 등으로 무한 경쟁을 벌일 게 아니라 지역 대학간에 각 대학의 특성을 살리면서 협력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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