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가 작업장' 매일 밤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환경미화원들

'도로 위가 작업장' 매일 밤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환경미화원들

  • 2019-06-27 05:00

부산 수영구 환경미화원들, 생명을 담보로 도로에서 쓰레기 이적 작업 십수년 째
미화원들 "음주 차량이 제일 무섭지만, 구는 알고도 공간 마련할 예산 없다는 대답만"
하루에 70여 차례 불법 주정차, 역주행으로 교통법규 위반까지

25일 오후 10시 부산 수영구의 한 대로에서 역방향 상태로 후진 중인 쓰레기 수거 화물차 앞에서 마주오던 차량들이 위험하게 차선을 바꾸고 있다. (사진=부산CBS 박진홍 수습기자)

 

부산의 한 지역 환경미화원들이 매일 밤 도로 위에서 위험천만한 쓰레기 수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미화원들은 오래전부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지만, 관할 기초단체는 이렇다 할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10시 불 꺼진 수입차 매장들과 맞닿아 있는 부산 수영구의 한 6차선 도롯가.

환경미화원들이 주황색 고깔 모양의 라바콘 몇 개로 한 개 차로를 막아놓은 뒤, 인도에 걸쳐 불법 정차한 쓰레기 수거차 틈에서 '이적 작업'을 시작했다.

25일 늦은 오후 부산 수영구의 한 도로에서 쓰레기 옮겨담기 작업을 끝낸 소형 화물차가 횡단보도를 통해 후진해 인도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부산CBS 박진홍 수습기자)

 

앞서 지역 골목골목을 돌며 음식물·생활 쓰레기를 수거해온 1t 소형 화물차에서 최종 목적지인 강서구 생곡 쓰레기 매립장으로 들어갈 대형 트럭에 내용물을 옮겨 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 차선에서는 차량들이 제한속도 60km가 훌쩍 넘는 빠른 속도로 쌩쌩 내달리고 있어 환경미화원들이 작업 진행을 위해 주고받는 대화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일부 차량들은 라바콘으로 진로가 막히자 차선을 바꾸려다 서로 뒤엉키며 경적을 울렸고,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색 오토바이는 라바콘 사이를 빠른 속도로 뚫고 지나갔다.

특히, 두 쓰레기 트럭의 적재함을 마주 보게 하는 작업 과정 탓에 한 트럭이 도로 주행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정차하자, 옆에서 쌩쌩 달려오던 운전자들이 갑자기 발견한 '역방향 쓰레기차'에 놀라 경적을 울려댔다.

십수 년 동안 매일 밤 4시간여 걸리는 이적 작업을 해온 환경미화원들이지만, 이들은 매번 일할 때마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고 토로했다.

25일 늦은 오후 부산 수영구의 한 도로에서 미화원들이 소형 화물차에 올라 대형 수거차에 쓰레기를 옮겨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부산CBS 박진홍 수습기자)

 

작업 중간 도롯가를 수시로 돌아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한 여성 미화원은 "라바콘을 세워둬도 운전자가 잘 못 보고 그냥 지나가 버려 사람도 다치고 차도 부서지는 경우가 잦다"면서 "특히 음주 차량이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미화원은 "실제 2000년대 초반 한밤중 재활용쓰레기를 수거해 수영구의 한 도롯가에서 분리작업을 하던 미화원이 음주 차량에 치여 숨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용역업체 소속 수영구 음식물쓰레기 및 생활폐기물 수거 담당 환경미화원 69명은 '안전한 중간 이적지를 마련해달라'며 줄기차게 대책 마련을 구에 요구해왔다.

이와 관련 강성태 수영구청장과 면담까지 진행했지만, 구는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5일 늦은 오후 부산 수영구의 한 도로에서 쓰레기를 가득 싣고 역주행 방향으로 대기 중인 소형 화물차 옆으로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사진=부산CBS 박진홍 수습기자)

 

수영구 담당 공무원은 "근로자의 작업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용역회사가 책임져야 할 몫"이라며 "용역회사도 인구밀도가 높은 수영구에서 이렇다 할 빈 공간을 찾기가 어려운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구 차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앞서 수영구는 2000년대 초반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던 환경미화원 한 명이 작업 중 음주 차량에 치여 숨지자, 뒤늦게 선별작업장을 만든 바 있다.

수영구 환경미화원노조 박장양 위원장은 "일주일에 3번씩 환경미화원들이 지역 내 도로 10곳에 흩어져 역주행, 불법 주정차 등 교통법규를 하루에 70여 차례나 어기며 생명을 담보로 중간 이적을 하고 있다"면서 "구청에 수없이 건의했지만, 부지를 따로 마련할 예산이 없다며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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