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 편에 설 것인가?" 할란카운티, 질문을 던지다

"당신은 어디 편에 설 것인가?" 할란카운티, 질문을 던지다

부산출신 유병은 연출가 데뷔작 '1976 할란카운티'
관람객 7천여 명 흥행, 영화의 전당 대극장서 뮤지컬로 좌석 점유율 50%
'노동'과 '희생'을 논하다, 묵직한 주제 풀어내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 (부산 CBS/자료사진)

 

자본은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고 성장한다. 공장에서, 탄광에서 인간은 부품으로 전락한다. 곧 숨이 끊어질 노새보다 못한 존재가 인간이다.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는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과 외침, 희생, 정의를 위한 길에 연대하는 과정을 절절히 그려낸다.

법률대리인을 앞세운 사측의 공작, 노-노 갈등, 눈앞의 임금 인상으로 인한 연대의 무너짐, 투쟁과 가정 사이의 고뇌, 자발적인 투쟁의 참여, 희생이 필요한 순간 주저하지 않는 용기까지.

뮤지컬의 배경은 1976년 미국 켄터키주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우리네 노동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씨 사건과 무려 425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다 지상에 내려온 파인텍 노동자들까지.

할란카운티의 처절한 외침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Which side are you on?" 어느 편에 설 것인가 160분간 이어지는 러닝타임 동안 뮤지컬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위기의 순간, 당신의 선택을 물어본다.

'1976 할란카운티'는 2018년 부산 청년연출가 선정 작품으로도 의미가 깊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유병은 연출은 뮤지컬 ‘삼총사’, ‘뱀파이어’, ‘조로’, ‘올슉업’등의 작품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연출가일을 하는 동안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 노동에 대한 질문을 '부산' 무대에 먼저 올렸다.

문화불모지=부산이라는 공식과 부산에서 초연 뮤지컬을 흥행하기 어렵다는 그 단단한 벽에 부산 출신의 청년 연출가가 도전장을 낸 것이다.

결과는 흥행. 관객 7천여 명이 몰렸다. 영화의 전당 대극장에서 뮤지컬이 평균 좌석점유율 50%를 넘기기란 쉽지 않다,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를 제작한 유병은 연출가 (부산 CBS)

 


'1976 할란카운티'를 총연출한 유병은 연출가는 CBS와의 인터뷰를 통해 뮤지컬 제작 배경과 의미,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대를 관통하는 '노동극'이라는 수식어로 손색이 없는 '1976 할란카운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 가운데, 또 귀한 노래 한 곡 덕분에 탄생했다.

"탄핵정국, 촛불시위에 나가면서 'Which side are you on'이라는 노래를 알게 됐습니다. 이 노래는 1935년 할란 카운티 광부 아내가 작곡한 노래로 미국 현대 노동가의 시초격입니다. 노래는 밥 딜런, 우리나라에서는 김광석, 김민기 선생님께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미국의 사례를 빌어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뮤지컬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탄핵 정국 때의 나라 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일 잘할 수 있는게 뭘까? 뮤지컬을 하는 사람으로 보여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어 한 땀 한 땀 꼬박 1년 반을 집필했다.

"초고가 나오는데 1년 반 정도 걸렸어요. 빨리, 잘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탄핵 정국 때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아빠로서. 이 나라에 살게 하는게 미안해서 그 마음을 담아 대사와 스토리를 써 내려 갔습니다"

1970년대 미국, 할란카운티를 배경으로 가져온 이유도 있다. 1976년은 할란카운티 광부들이 파업에서 승리한 해이다. 그해 켄터키주가 110년 만에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여러모로 사회적 약자들의 '승리'한 역사적인 순간인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이라 해도 그 과정은 의미 있고, 승리의 기억은 값지다는 것을 나누고 싶었다.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 (부산 CBS/자료사진)

 

유 연출가는 뮤지컬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희생'을 꼽았다. 할란카운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갈림길의 순간에 고뇌한다. 하지만 결단은 단호하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더라도 '승리'를 동지들에게 안겨주고 싶은 것이다.

"제가 느끼기에 현대사회 사람들은 공공의 적이 나타나기 전에는 잘 하나로 뭉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촛불시위에서 느낀 것은 -각자의 이유와 처지는 다르지만- 참 하나로 뭉치기 힘든 다양한 이들도 한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 각자 다르게 살아왔지만 결국 하나를 위해 선택하는 것, 연대하는 것, 이것이 광부들의 승리한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과정에는 개개인의 큰 결단과 희생이 있었던 것이지요"

뮤지컬은 노동가들의 투쟁 이야기와 핍박받는 흑인이 자유를 찾아떠나는 과정을 씨줄과 날줄로 엮었다. 어찌 됐던 사회에서 '불가촉천민'취급을 받는 약자들이다.

"글을 쓰면서 억울한 이, 싸워보지도 못한 나약한 위치에 있는 존재가 누구일까에 대해 깊게 고민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 신분이라면? 말을 못 한다면? 흑인이라면? 그래서 흑인 '라일리'가 등장했습니다. 뮤지컬이 이중 플롯이어서 작가로서는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결국 노동자, 흑인의 스토리가 교차하면서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을 위해 싸우는 것, 감싸주는 것, 그것이 가치 있고 좋은 싸움이라는 것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뮤지컬 할란카운티에 등장하는 음악 또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노래는 우리네 민중가요를 떠올리게 한다.

광부들이 목숨을 걸고 막장으로 향할 때는 파업 출정가를 방불케 하고, 각 주인공이 고뇌하는 순간 흘러나오는 탄식의 노래는 우리네 '한'정서가 배어난다.

작품의 스토리와 음악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연출가와 음악감독이 1년 반동안 동고동락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음악감독은 제가 배우로 공연을 하면서 만났습니다. 그는 작곡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촛불정국 때 지하에 방 하나를 잡아놓고 함께 작업했습니다. 보통 곡, 대본 따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희는 첫 줄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작업 했습니다. 함께한 고민들이 결국 아름다운 음악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부산문화재단의 청년사업가 지원 사업에 선정된 작품이다. 부산 출신인 유 연출가는 고향에서 의미있는 작품을 올리고 싶어 지원했고 최종 작품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지원금 5천만원으로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부산은 문화불모지다.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 (부산 CBS/자료사진)

 

부산발 뮤지컬이지만 앞으로 또 무대에 오르는 것은 기약이 없다.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 등 관련 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부분이다.

"이번 작품은 부산에서 뿌리내리고 활동을 하려는 저의 의지의 표명이니다. 또 연출가 유병은은 이런 사람이라고 부산무대에서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원래 뮤지컬이라는게 누구 하나 잘나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대, 조명 디자인, 음향시설 등이 함께 가야 합니다.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포진돼 있어야 합니다. 그분들과의 아트웍이 뮤지컬의 완성도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부산은 인프라가 너무 열악합니다. 천2백석이 넘는 극장이 잘 없죠. 대구는 3개나 있습니다. 앞으로 오페라 하우스나 드림시어터가 생기면 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지금까지는 지원도 관심도 열악합니다"

요즘에는 뮤지컬을 창작하려면 거대 자본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초연작을 만드는데 20억원 가량이 투입된다. 이렇게 1년에 뮤지컬 200여 개가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투자금 회수율은 30%에 불과하다. 야심 차게 신작 뮤지컬을 무대에 올려도 관객의 선택을 받는 작품은 그만큼 적다. 유 연출가는 부산에서의 작업이 하나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스타 마케팅, 일부 배우들의 높은 출연료 때문에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들죠. 부산에서 제한된 예산으로 작품을 올리기위해 '일단 실력으로 평가받자, 또 좋은 제작 시스템을 만들자'에 집중했습니다. 만원을 주더라도 제때 주고, 임금체불 하지 말자. 그 첫발을 이제 막 뗐다고 생각합니다. 할란카운티를 시작으로 부산의 이야기를 담은, 또 부산의 정서를 표현하는 그런 작품도 올리고 싶습니다"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의 특징은 딱히 주인공이 없다는 것이다. 보는 시각마다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노래 가사 중에 작은 힘들이 모여 위대한 함성을 만든다는 내용이 있어요. 할란카운티를 꿰뚫는 정서죠. 누구 하나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다들 맡은바 역할을 하는 것, 그 과정의 행복함과 그 힘의 진실성을 관객들이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1976 할란카운티' 대사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막장에 들어가면 모두 얼굴에 때가 시꺼멓게 낀다. 때문에 광부는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언제쯤 편견없이 연대할 수 있을까? '1976 할란카운티'가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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